세상에는 정말 많은 가치관과 방향이 있다.
누군가는 효율을 말하고, 누군가는 성장을 말한다. 누군가는 자유를, 누군가는 경쟁을, 누군
가는 생존을 가장 앞에 둔다. 그 모든 가치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 시선이 오래 머무는 곳은 결국 공공선이다.
공공선이라는 말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내가 생각하는 공공선은 단순하다. 나 혼자만의 편의
나 이익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방향. 어떤 개인의 성공으로 끝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공이 타인의 가능성으로 번져가는 방향. 내가 무언가를 만든다면,
적어도 그것이 세상에 남기는 흔적이 해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공공선은 늘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Cluely 같은 서비스를 두고 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계속 제기된다. 누군가
에게는 그것이 부정행위를 돕는 도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창업자에게는 그것이 다른
의미의 공공선일 수도 있다. 기존의 평가 방식, 면접 방식,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는 방식 자
체가 불공정하다고 느꼈다면, 그 틀을 흔드는 일이 자신에게는 선한 문제의식일 수 있다.
나는 여기서 그 서비스가 옳다거나 그르다고 단정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공공선은 언제나 보편적인 얼굴로만 등장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떤 사람의
문제의식은 다른 사람에게 불편하게 보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보고 있는
가이다. 돈인가, 관심인가, 권력인가, 아니면 자신이 겪은 어떤 부조리인가.
요즘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보다, 문제를 잘 정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라는 말이다.
그 말은 어느 정도 맞다. 이제 단순히 주어진 문제를 빠르게 푸는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
다.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어디에 병목이 있는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
이 더 큰 가치를 만든다.
하지만 이 문장을 너무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는 높은 확률로 ‘문제를 정의하는 일’ 자
체에 집중하게 된다.
무슨 문제가 유망할까.
어떤 문제가 시장성이 있을까.
어떤 문제가 투자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일까.
어떤 문제가 사회적으로 그럴듯해 보일까.
그렇게 문제를 정의하려고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문제는 내가 정말 해결하고 싶은 문제
가 아니게 된다. 그저 잘 정리된 문장, 설득력 있는 기획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좋은 명제
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이미 많은 문제를 풀며 살아간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
학교에서 풀도록 시키는 문제들.
직장에서 나에게 위임되는 문제들.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들.
이런 문제들은 해결되면 분명히 편해진다. 마음이 놓이고, 몸이 덜 피곤해지고, 때로는 타인
의 인정을 받는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런 문제들은 대체로 나에게 주어진 문제다. 누군가가 풀라고 건넨 문제다. 사회가, 조직
이, 관계가, 제도가 나에게 배정한 문제다. 그것을 잘 푸는 능력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곧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문제를 풀지 말고 내 문제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내 문제를 찾겠다고 애쓰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문제를 쇼핑하게 된다. 세상에 널린 문제들
을 둘러보며 나에게 맞는 것을 고르려고 한다. 검색하고, 비교하고, 유망한 영역을 고르고,
LLM에게 묻는다.
하지만 공공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찾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찾아냈다기보다, 발견했다. 그리고 그 발견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이 겪은 결핍, 자신이 목격한 부조리, 자신이 사랑하는 사
람이 겪은 고통,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친 균열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문제를 잘 정의하는 능력은 어쩌면 제3자의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소양에 가깝다.
타인의 문제를 이해하고, 구조화하고, 해결 가능한 단위로 쪼개는 능력. 그것은 분명 중요하
다. 좋은 기획자, 좋은 창업자, 좋은 리더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풀고 싶은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무엇에 오래 분노하는지 알아야 한다.
무엇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지 알아야 한다.
무엇을 위해서는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때 문제는 problem이 아니라 mission이 된다.
problem은 해결하면 사라진다.
mission은 해결해도 계속 나를 이끈다.
problem은 밖에서 주어질 수 있다.
mission은 내 안의 경험과 세계관을 통과해야만 생긴다.
이렇게 발견한 문제는 이상하게도 나를 위해 풀기 시작했는데, 결국 남을 위해 풀게 된다.
이것은 앞서 말한, 남에 의해 주어진 문제와는 완전히 다르다.
남에 의해 주어진 문제는 해결하면 내가 평가받는다.
남을 위해 발견한 문제는 해결하는 과정에서 내가 변한다.
그것은 꼭 거대한 창업일 필요도 없다. 어떤 문제를 푸는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어떤 행위
를 지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일일 수도 있고, 제품을 만드는 일일 수도 있고, 사
람을 연결하는 일일 수도 있고, 특정한 제도를 바꾸는 일일 수도 있다.
다만 어느 순간 개인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그 미션을 감당하기 위해 법인이 되어야 할 수도 있다. 단체가 되어야 할 수도 있다. 더 많
은 사람을 설득하고, 자원을 모으고, 구조를 만들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바꾸어야 할 수도
있다.
그때 조직은 돈을 벌기 위한 껍데기가 아니라, 미션을 오래 살아남게 하기 위한 그릇이 된
다.
어쩌면 기업과 사회는 선교사(missionary)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선교사는 특정 종교를 전파하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자기 삶으로 증명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전염시키는 사람에 가깝다. 단순히 제품을 파는 사
람이 아니라, 왜 이 제품이 존재해야 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 단순히 회사를 키우는 사람
이 아니라, 왜 이 조직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사람들은 기능만으로는 오래 움직이지 않는다. 더 빠른 앱, 더 싼 서비스, 더 편한 도구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진심으로 믿는 방향, 그 믿음이 만든 언어와 태
도, 그리고 그 방향에 함께 서고 싶게 만드는 힘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은 채용공고에는 문제해결력, 실행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적어두지만, 실제로
는 자기 안에 작은 복음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더 많은 기능인을 필요로 하는 것 같지만, 어떤 순간에는 결국 누군가의 확신과 헌신에 의해
움직인다.
물론 그 확신은 위험할 수 있다. 선교사적 태도는 쉽게 독선이 될 수 있고, 미션이라는 이름
으로 타인을 소모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공공선이 중요하다. 내가 믿는 것이 정말
타인의 삶을 넓히는가. 내가 전하려는 것이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더 자유
롭게 하기 위한 언어인가.
좋은 선교사는 자신을 증명하려고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본 것을 너무 선명하게
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그 선명함이 누군가에게는 방향이 된
다.
세상도 결국 그런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일을 직무로만 대하지 않는 사람.
문제를 과제로만 보지 않는 사람.
자신이 발견한 미션을 삶의 언어로 번역하고, 그것을 제품과 조직과 행동으로 만들어내는 사
람.
그런 의미에서 창업자란 어쩌면 가장 세속적인 형태의 선교사일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그런 일을 하고 싶다.
문제를 잘 푸는 사람으로만 남고 싶지는 않다.
문제를 잘 정의하는 사람으로만 인정받고 싶지도 않다.
내 경험을 통과해 발견한 어떤 미션을, 세상에 실제로 작동하는 형태로 만들고 싶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작아 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불편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
어도 나에게는 분명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조직이 되고, 시간을 쓰고, 책임을 질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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